[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연결된 것은 하나다.

[본 문] 요한복음 14장 8-11절 (성경 봉독자를 세워서 멋있게 읽어 주기)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은 신령해지고 영적인 자가 되기를 원합니까?
   현재 위치에서 <차원>을 높이기 원합니까? (대답을 기다렸다가)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잘 듣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차원을 높이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전하고, 잘 듣고, 잘 행하면

   <지혜와 지식의 차원>이 ‘한 차원’씩 올라가게 되고,

   <영적 차원>이 ‘한 차원’씩 올라가게 되고,

   육의 행실도 영도 더욱 변화되어
   <휴거의 차원>도 ‘한 차원’씩 올라가게 됩니다.

   그저 이론적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며,
   말씀을 듣고 기분 내고 힘내라고
   심리적으로 영향을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 말씀을 듣고 믿고 행하면,
   즉시 지혜, 지식, 영적 차원, 휴거의 차원이
   한 차원씩 올라가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신령해지고, 영적인 자가 되고, 차원을 높일 수 있는지
   그 답을 알려 주는 말씀입니다.

   구시대 기성인들은 <기도>를 엄청나게 합니다.
   그리고 방언도 하고, 예언하고, 영적으로도 밝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새 역사>를 못 찾아옵니다.
   <신령한 말씀>을 못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를 죄에서 구원하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구원자는
   아무도 모르게 하나님과 성자께
   이 시대를 구원하는 말씀을 받아서 가지고 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성자’를 모릅니다.
   전능하신 삼위일체의 성자, ‘성자 본체’를 모릅니다.

   오직 성자가 이 시대에 자신의 육으로 보낸 자, 시대 구원자만이
   <성자 본체>를 압니다.

   고로 성자는 ‘온전히 아는 자, 자신의 분체, 자신의 육’에게만
   이 시대를 구원하고 휴거시키는 말씀을 줍니다.

   또한 시대 구원자도 조건을 세워
   스스로 말씀을 깨달아 알기도 합니다.

   그는 이 시대 말씀을 세상에 전하며
   비진리와 기성의 그릇된 성경 해석과 그릇된 사고를 깨부수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고,
   이 시대 사람들의 육과 영을 구원하고 휴거시킵니다.

◎ ‘연결된 것은 하나다.’ - 오늘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 먼저 오늘 하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 이해시켜 주겠습니다.

   오늘의 성경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8-11절 말씀입니다.

   이번 주에는 요한복음 14장 전체를 읽어 보고,
   그 말씀처럼 이 시대도 그러함을 깨닫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 주고 증거하며 이야기해 주니,
   제자 빌립은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았으니 정말 보고 싶다고 하며
   보여 주면 만족하고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빌립아.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거늘
     어찌하여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못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심을 믿어라.

     내 말을 듣고 내가 행하는 일을 보고서 나를 믿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는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자’이시고,
   <예수님>은 ‘메시아’이지만 ‘땅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을 본 것이 <하나님>을 본 것일까요?

   아무리 메시아가 한 말이라도
   예수님을 본 것이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하는 말은
   확 납득이 가지 않을 것입니다.

   <전능하신 성자>께서 ‘예수님의 입’을 통해 하신 말씀입니다.
   그 말이 확실히 맞지만, 이해하고 납득해야 확실히 알고 외칩니다.

★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이 말씀은 정말로 엄청난 말씀입니다.

   이 한마디를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서
   <구원>이 좌우되고 <운명>이 좌우되고
   <화>를 받느냐, <축복>을 받느냐가 좌우됩니다!

★ 이 말씀을 듣고 이해하지 못한 자들은
   예수님을 극적으로 반대하는 반대자, 악평자가 되어
   “참람하다. 자기를 신이신 하나님으로 보라고 한다.” 하며
   즉시 배척하고 이단시하며 핍박했습니다.

   그리함으로 <운명>이 ‘사망’으로 갈려 갔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믿은 자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운명>이 ‘생명’으로 갈려 갔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본체’가 아닙니다.
   몸도 다르고, 살도 다릅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예수님을 본 것이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말씀했는지,
   그 입장을 깨달아야 됩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을 본 것이 <하나님>을 본 것이라는 것만 깨닫지 말고,
   이 시대도 <보낸 자>를 본 것이
   <하나님, 성령님, 성자>를 본 것임을 꼭 깨달아야 됩니다.

   그래야 신령해지고, 지혜와 지식의 차원도 높아지고,
   영적 차원도 높아지고, 휴거의 차원도 높아집니다.

<잠시 쉬었다가>

   전에 성자께서 분체인 선생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것을 확실히 깨우쳐 주고 이해시켜 주려면,
     <더 이상 없는 최고의 비유>를 들어 말해 줘야 된다.

     그러나 이 <최고의 비유>는 신령한 자가 줘야 받을 수 있다.

     본인이 그만큼 실력이 있어서
     <비유>를 깨닫고 말하기도 하지만,
     <더 이상 없는 최고의 비유>는 신령한 자가 줘야 받는다.

     그런 비유는 밭에 숨겨진 보화같이 귀한 비유의 말이다.”

   오늘 말씀은 <최고로 합당한 비유>를 들어서 말해 주면,
   모두 확실히 알 것입니다.

   <합당한 비유>는 1억 천만금같이 귀한 말입니다.
   이 비유를 들어 깨닫게 해 주겠습니다.

   <최고의 비유>를 들어 말하는 자는
   - 지혜를 받은 자이고
   - 삼위일체가 깨우쳐 준 것을 받은 자입니다.

   하루 종일 말하고, 한 시대를 두고 말해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럴 때 <최고의 비유>를 들어 ‘한마디’만 해 주면
   듣는 자들이 확 받아들이고 이해합니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이에 대해 <1억 천만금의 최고로 합당한 비유>를 들어서
   설명해 주고 이해시켜 주겠습니다.

   이 비유를 찾으려고,
   마치 보물을 찾듯 ‘수백 가지의 비유’를 찾았습니다.

   그중에서 <최고의 비유>를 찾았고,
   그제야 성령님은 이 설교를 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1억 천만금의 최고의 비유>가 무엇인지 영상을 볼까요?
   수백 가지 비유 중에서 찾은 <최고 극적인 비유>입니다.
   <최고 극적인 비유>이니, 먼저 마음의 준비를 잘하기 바랍니다.
   최고로 잘 납득시키기 위함입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예~쁜 여자 한 명이 극히 야한 비키니를 입고 해변에 출현했습니다.

   순식간에 뭇 남자들이 여자를 쳐다보며
   “정말 멋있다! 알몸과 같다!” 했습니다.

   여자가 “저 예뻐요? 아름다워요?” 하니,
   남자들은 “정~말 말로 할 수 없이 아름다워요!” 했습니다.

   여자가 “저는 몸을 가꾸기 위해
            21년 동안 운동을 했어요. 만족해요?” 했습니다.

   이에 뭇 남자들은
   “금단의 열매를 보면 더 만족할 거예요!” 하며 함성을 질렀습니다.

   여자는 말했습니다.

   “<내 몸>은 <금단의 열매>와 연결되어 있으니,
     <거의 벗다시피 한 내 몸>을 보는 것이
     <금단의 열매>를 보는 것과 다름없어요.

     그런데 어찌하여
     <금단의 열매>를 보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까?

     만져 보려고 하는 것입니까, 따먹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이렇게 해도 이해를 못 하면, 옷을 입어 버리겠어요.” 했습니다.

   그랬더니 남자들은

   “알았어요! 이해했으니, 제발 옷을 입지 말아요.
     옷을 입으면 물에 빠져 죽어 버릴 거예요.
     비키니를 입은 것만 봐도 만족해요.

     <금단의 열매>는 <몸>과 연결되어 있으니,
     그것만 봐도 ‘생각의 눈’으로 느껴져 보여요.” 했습니다.

   여자는 “나를 잘 보세요. 앞도 보고 뒤도 보세요.” 하며
   여자의 ‘각 지체’를 다 보여 줬습니다.

   그러나 ‘핵’인 <금단의 과일>만
   비키니에 숨긴 채 안 보여 줬습니다.

   <금단의 과일>에 대해서는 말로 다 설명해 줬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내 몸>을 다 봤으니 <금단의 열매>를 본 것입니다.
     <내 몸>을 보면서 <핵>을 느끼고 만족하면 됩니다.
     더 이상은 없어요.

     <금단의 열매>는 나와 결혼한 자에게만 보여 줄 거예요.
     그 사람은 딱 한 명뿐입니다.” 했습니다. <끝>

◎ 이 여자는 누구일까요?
   그리고 여자의 몸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 비유를 ‘오늘 말씀’으로 연결시켜야 됩니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이 말씀을 최고로 이해하도록 <최고의 비유>로 말씀했습니다.

(* 다시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 이 비유에서 <여자>는 ‘구원자’입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이고,
   <이 시대 성약>에서는 ‘시대 구원자’입니다.

   그리고 <여자의 몸>은
   ‘구원자를 통해 전하는 하나님과 성자의 말씀’입니다.

   <금단의 열매>는
   구원자의 육신을 쓰고 오신 ‘하나님, 성령님, 성자’이십니다.

   곧 <구원자>가 <말씀>을 가지고
   <삼위일체>를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끝>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직접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자신의 육으로 쓰는 ‘구원자’를 보이며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나타나십니다.

   마치 <여자>가 자기 몸의 각 지체를 보여 주며
   금단의 열매를 느끼고 보게 하듯이,
   <삼위일체>도 사랑하는 자들에게
   구원자의 육을 보이며 나타나시고, 말씀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와 그 삼위와 연결된 구원자를 하나로 안 보니,
   <여자>가 <옷>을 입어 가리듯
   <구원자>는 자신을 숨겨 버립니다.

<잠시 쉬었다가>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자다.
   이제 이 말씀이 이해되지요?

   이와 같이 이 시대도
   <시대 구원자>를 본 자는 <하나님, 성령님, 성자>를 본 자입니다.

   신약 때 예수님은 ‘육신 쓴 하나님과 성자’입니다.
   성약 때 보낸 자는 ‘육신 쓴 하나님과 성자’입니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성자가 ‘예수님의 육신’을 쓰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이 시대에도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선생의 육신’을 쓰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본 것이다.

     <분체>는 ‘사람’이고 <삼위일체>는 ‘신’이지만,
     <삼위일체>가 ‘그 육신’을 쓰고 나타나 말씀하며
     자신을 나타내고 드러내며 역사하신다.

     연결된 것을 하나로 보아라.”

   <신>이 그냥 말씀하면, <인간>은 아무도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고로 하나님과 성자는
   ‘그 시대에 딱 한 사람’을 ‘자신의 몸’으로 택하여
   ‘전체’에게 말씀하며 ‘자신의 뜻’을 전달하십니다.

(* 이에 대해 또 <비유>를 들어 말씀해 주겠습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방송국의 프로그램은 ‘전파’로 내보냅니다.
   그러나 ‘화면’이 없이는 못 봅니다.

   하나님과 성자가 ‘말씀’을 주셔도 그냥은 못 듣습니다.
   고로 ‘그 시대 구원자’를 보내십니다.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전파로 내보내면 ‘화면’을 통해서 보듯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시대 구원자의 육신’을 쓰고
   ‘시대를 구원하는 말씀’을 전파하여
   <삼위>와 <삼위의 행하심>을 보게 하십니다. <끝>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 말씀이 이해되지요?

   지금까지 말씀해 준 터전 위에
   <핵심>을 한 번 더 찔러서 말씀해 주겠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본체는 ‘인간의 육’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구원역사 6000년 동안 ‘본체’는 안 보여 주셨습니다.

   모세,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봤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그것은 ‘본체’가 아니라
   그때 하나님을 깨우쳐 주려고 ‘그 차원 급’으로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보이며 말씀하시기를
   “손을 보아라. 뒤를 보아라. 세 사람을 보아라.”했습니다.

   모두 ‘그 차원 급’으로만 나타나셨습니다.
   그 모습이 ‘본체’가 아닙니다.

★ <여자의 금단의 열매>는 못 봐도
   <여자의 몸>은 늘 볼 수 있습니다.

   <몸>을 통해서 항상 <핵>을 보는 격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오셨을 때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못 봐도
   육신 쓴 하나님, 성령님, 성자,
   곧 <예수님>은 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니 쉽게 자주 봤습니다. 만족했습니다.

   이렇게 연결된 것을 하나로 본 자들은
   종의 운명에서 아들의 운명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들이 곧 ‘차원 높은 사도들’이었습니다.

   사도들에게 ‘예수님의 정신’이 임하여
   그들은 ‘제2의 예수님’이 되어 <신약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들의 증거를 듣고 그 시대 사람들은

   “기다리던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오셨구나!
     약속대로 오셨구나!

     구약에서 하나님이 온다고 했던 역사가
     예수님을 통해 새롭게 이루어지는구나!” 알게 됐습니다.

   특히 열두 제자들과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몸’이 되어 <신약 복음>을 담대히 전함으로
   예수님이 살아 있을 때 못 한 것들을 하면서
   <신약역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직접 보려는 율법 아래 제사장들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못 봤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결국 그 <운명>이 ‘사망’으로 갈려 갔습니다.

   이 시대는 <성약시대>입니다.

   다시 오신다는 약속대로
   <성자>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함께 다시 오셨습니다.

   <시대 구원자의 육신>을 쓰고 다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고 ‘성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성자의 육’으로서 ‘신약의 구원주’입니다.

   고로 그 육신은 다시 살아오지 않습니다.
   육신이 죽은 후 2000년 동안 영으로 <신약역사>를 폈습니다.

   이제 새롭게 시작된 <성약역사> 때는
   예수님의 육신을 쓰고 신약역사를 펴셨던 성자가
   시대 구원자의 육신을 쓰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함께 다시 오셨습니다.

   그리고 성자는 그를 통해 이 시대에 해당되는 말씀을 주시며
   <신부급 구원역사>, <휴거 역사>를 폈습니다.

   신약 때와 같이 이 시대도
   <구원자의 육신>을 통해 <삼위일체>를 본 자들은
   아들의 운명에서 신부의 운명으로 바뀌었습니다.

   더 나아가 구원역사 6000년 만에
   <휴거>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고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 신부가 되어 <천국 황금성>을 차지하고
   영원한 운명이 뒤바뀌었습니다.

   연결된 것은 하나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 중요 부분

★ 핵심은 이것입니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연결된 것을 하나로 봐야 됩니다.
   → 이것으로 인해 <운명>이 갈립니다.

   <신약 때> 예수님의 육신을 통해 삼위일체를 본 자들은
   구원받고 아들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육신을 통해 삼위일체를 못 보고
   믿지 않고 이단시한 자들은
   구시대에 머무르거나 악평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성약 때> 시대 구원자의 육신을 통해 삼위일체를 본 자들은
   구원받고 신부의 운명이 되었고,
   더 나아가 휴거되어 <천국 황금성>을 차지하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고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시대 구원자의 육신을 통해 삼위일체를 못 보고
   믿지 않고 이단시한 자들은
   구시대에 머무르거나 악평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연결된 것을 하나로 보느냐, 못 보느냐에 따라
   이와 같이 <운명>이 갈리게 됩니다.

   섭리역사 안에서도 그러합니다.

   시대 구원자를 통해서 얼마나 삼위일체를 보고 느끼느냐에 따라서
   상 – 중 – 하로 운명이 갈리게 됩니다.

   <휴거>에도 큰 차이가 생깁니다.

★ 구원자를 통해 삼위일체를 못 보고
   삼위일체를 직접 보여 달라고 하면,
   마치 비키니를 입은 여자가 옷을 다 입고 자신의 몸을 숨기듯,
   구원자도 숨어 버립니다.

   그러면 옷 위로 여자의 몸을 상상해야 하니 감도가 떨어지듯,
   구원자를 숨긴 상태에서 삼위일체를 봐야 하니
   깨달음의 강도, 불의 강도, 역사의 강도가 너무나 약합니다.

★ 사람들이 구원자를 통해 삼위일체를 못 보고 불신하니,
   환난 때 구원자는 <옷>을 입고 숨깁니다.

   한 개인이라도 구원자와 삼위일체를 하나로 안 보면,
   구원자를 숨겨 버립니다.

   그리고 보통으로만 말해 줍니다.

★ 개인이든, 민족이든
   구원자와 삼위일체를 하나로 안 보고 안 믿어 주면,
   마치 <옷>을 입듯이 <말씀을 내놓는 강도>와
   <주가 나타나는 강도>를 낮추어 숨깁니다.

★ <몸>을 보면, 느낌이 강하게 옵니다.
   그러나 <옷>을 입어 버리면 느낌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구원자와 삼위일체를 하나로 안 보고 안 믿으니,
   구원자는 서서히 ‘말씀의 옷’을 입고 숨깁니다.

   그러면 흥분이 가라앉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삼위일체는 ‘영’이니, 육으로 직접 보려고 하면 못 봅니다.
   고로 예수님 때와 같이 이 시대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육신, 구원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쉽게 구원자의 육신을 보여 주고 그를 통해 <말씀>을 주면서
   삼위일체의 모습이 겹쳐 보이게 하며
   <성약 구원역사>, <휴거 역사>를 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육신’을 쓰고 행하면서
   <휴거>로 <창조 목적>을 완성하셨습니다.

   특히 마지막 성약역사에 와서 삼위일체의 신부가 된 여러분들은
   어느 시대 어느 누구보다도
   구원자가 전하는 <가장 차원 높은 신부의 말씀>을 통해서
   <삼위일체>를 보고 사는 자들입니다.

   이 말씀을 주시면서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너희들은 구원자와 삼위일체를 하나로 보고 따랐기에
     신부의 운명으로 뒤바뀌었고, 더 나아가 휴거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더 차원을 높이고 신앙의 열을 내야 된다.

     휴거의 가치, 구원자의 가치, 섭리사의 가치, 시대 말씀의 가치를
     더 차원 높여 깨닫고 열을 내지 않으면
     <휴거의 차원>이 높아지지 않는다.

     <너희 생각의 차원>만큼만 역사가 일어난다.”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지혜, 지식, 영적 차원>이 한 차원씩 올라가고,
     어떻게 해야 <휴거의 차원>이 한 차원씩 올라가겠느냐.

     연결된 것을 하나로 보아라.”

<전환>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그 모습과 신성을 나타내실 때
   첫 번째로 <구원자의 육신>을 쓰고 나타내십니다.

   <인간의 육신>은
   기본적으로 ‘삼위일체의 형상과 모양’을 닮아서 태어납니다.

   눈, 코, 입, 귀, 머리, 손, 발, 팔, 다리, 몸 등
   기본은 삼위일체와 닮았습니다.

   <구원자>도 인간입니다.

   지금까지는
   구원자의 육신을 쓰고 오신 삼위일체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만물>을 쓰고 나타나십니다.

   로마서 1장 20절을 보면 사도 바울도 말하기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했습니다.

   지금까지
   <보낸 자의 육신 쓰고 나타나신 삼위일체>에 대해서 말씀했지요?

   말이 나왔으니, <만물을 쓰고 나타나시는 삼위일체>에 대해서
   조금만 말씀해 주겠습니다.

   꼭 <만물의 글>을 배우고 귀히 여겨야 됩니다.

   가르쳐 줬는데도 감각이 둔하고 무디니,
   하나님이 <만물>로 여러 가지를 보여 주셔도
   하나님이 무엇을 행하시는지도 모르고,
   몰라서 사고도 당하고, 고통도 당하고, 고생도 하고,
   육적으로도 해를 보고, 경제적으로도 못살게 됩니다.

   <세상 학문>은 보편적으로는 다 배웁니다.
   고로 습득한 지식이 거의 다 비슷합니다.
   아무리 수준이 높아도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전능자의 글>은 ‘세상 학문’보다 만 배나 수준이 높습니다.
   <전능자의 글>은 ‘삼위가 창조하신 만물’입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는 ‘창조해 놓은 만물’로도 가르쳐 주십니다.
   고로 ‘만물의 글’을 배워야 됩니다.
 
   <만물의 글>을 배워서 <축복의 만물 계시 글>을 잘 읽어,
   한 번에 평생 번 것만큼 돈을 많이 번 사람도 있습니다.

   <만물의 글>을 배우고 잘 읽는 자가 더욱 ‘축복’을 받게 됩니다.

   <만물의 글>도 역시
   해변가에서 비키니를 입은 여자를 보여 주는 것과 같습니다.

   노골적으로 다 벗어야 느끼는 것이 아니듯,
   노골적으로 다 까놓고 말해 줘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해변가에서 수영복을 안 벗고 느끼게 하듯,
   <만물>을 들어 비유로 보여 줄 때
   ‘만물의 글’을 읽고 느껴야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3.16>도 성자에게 해당되는 ‘승천’은 알았지만,
   <승천>과 연결되어 있는 우리에게 해당되는 ‘휴거’는 몰랐기에
   정말 억울하고 한이 남았습니다.

   이와 같이 <만물 계시>를 보여 줘도
   <만물의 글>을 못 읽고 못 깨달으면
   하나님이 무엇을 행하시는지도 모르고,
   자기가 기도한 것을 들어주시는지도 모르고,
   자기만 계속 손해를 보고 억울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끝>

   벌거벗은 모습을 까놓고 보여 주지 않듯이,
   항상 다 까놓고 밝히지 않습니다. 옆의 것만 밝힙니다.

   옆의 것을 보면서 ‘연결된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선생도 지난 70년 동안
   <만물의 글>을 못 읽을 때는 못 얻었습니다.

   그러나 <만물의 글을 읽는 법>을 배우고, 읽고 행하니 얻었습니다.

   지도자들도 하늘의 일을 하니,
   <만물의 글>을 꼭 배우고 읽어야 됩니다.

   작년 여름에 수련회를 통해서 가르쳐 줬고,
   그 후에도 계속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으니
   꼭 배우고 읽어야 됩니다.

  <3.16 날>에도 ‘만물의 글’을 읽고 ‘휴거’를 깨달으라고,
   여기저기에 ‘만물’을 보여 주며 읽게 했습니다.

   야심작에만 무지개가 깔려 있었고,
   구름이 구름 기둥같이 공중으로 올라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며,
   모두에게 알게 했습니다.

   그러나 ‘만물 글의 문맹’이니 못 읽었습니다.

   자기 책임분담을 하여 깨달은 사람만 알았습니다.

   <하나>를 가르쳐 주면 <그와 연결된 것>도 알아야 됩니다.

   <육> 하면 <영>을 알아야 되고,
   <여자> 하면 <남자>를 알아야 되고,
   <보낸 자> 하면 <그를 보내신 삼위일체>를 알아야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한국의 세종대왕은 나라와 백성들을 사랑하여
   백성들이 쉽게 배우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한글>을 만들었습니다.

   세계의 여러 문자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한글>만이 누가 만들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고,
   글자를 만든 원리까지 알 수 있기에
   <한글>은 신비하고 뛰어나며
   세계에서 최고로 언어의 표현을 다양하게 할 수 있는 글자입니다.

   고로 진즉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이 시대 보낸 자도 그러합니다.
   이 시대는 ‘삼위일체의 신부’가 되어 사랑하는 시대입니다.

   선생은 <이 시대>를 너무나 사랑하여
   하늘의 신부들이 <하나님, 성령님, 성자>를 잘 알고 잘 통하라고,
   선생 먼저 <만물의 글>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과 성자는 선생에게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모습’을 보여 주시며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고,
     <하나님의 역사>는 낮은 데서 높은 데로 차원 높여 흐른다.”
하며 <만물의 글>을 읽어 깨닫게 하셨습니다.

   선생이 먼저 <만물의 글>을 배우고 모두에게 가르쳐 주어
   하늘의 신부들이 <만물 계시>로
   삼위와 잘 통하며 살게 해 주었습니다. <끝>

   섭리사의 계시자들 중에서
   <만물의 글>을 매우 잘 읽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어느 날은 <월명동 잔디성전>에서 기도하는데,
   벌레 한 마리가 자기 몸에 기어올랐답니다.

   즉시 “이곳에는 사람들이 많으니 계시를 못 준다.” 하는
   <만물의 글>을 읽고 자리를 옮겨서 <전망대>에 가서 기도했답니다.

   그 즉시 하늘이 주시는 계시를 길게 받았습니다.

   그 사람은 ‘만물의 글을 정말 빨리 읽는 프로’입니다.
   계시자로서 주님의교회에 다니는 사람입니다.

   모두 그같이 배워야 됩니다.
   그래야 그로 인해 문제도 풀고, 얻을 것도 얻습니다.

   삼위일체도 주도 급할 때는 순간 <만물>을 보여 주며 계시하고,
   어느 때는 <말씀>으로 직접 계시해 주면서
   할 일을 깨닫게 해 주고, 문제를 풀게 해 줍니다.

   선생이 매일 <잠언>을 기록하여 ‘하늘의 음성’같이 내보내면서
   모두 각자 기도할 때나, 잠언을 들을 때나
   각자에게 필요한 계시를 보냅니다.

   그러나 모르고 의식하지 않으니 거의 못 받습니다.

   받는 자들 소수가 선생에게 편지를 보내옵니다.

   삼위일체께, 주께 ‘마음과 생각’을 향하게 하고 집중해 봐요.
   즉시 깨닫게 됩니다.

   선생이 섭리사의 수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면회해 주며 만나려면 불가능하니,
   <만물의 글>을 보면서 ‘스마트폰’으로 통하듯 통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삼위의 글>인 ‘만물 글의 가치’를 몰라서 못 통하고,
   배우기 싫어서 안 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외국어>만 배우려고 하지,
   <삼위일체와 주와 통하는 언어>는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외국어에 능통한 자를 알아주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 영을 변화시켜
   삼위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체가 된 자를 최고로 봅니다.

   이것을 해야 모두 잘되기 때문입니다.

   모르면 사탄과 상대에게 패하고 당하고 결국 실패합니다.

   밤새워 공부하듯
   자기 육과 영을 위해서
   이에 해당되는 <만물의 글>을 공부해야 됩니다.

   <만물의 글>을 배우고 알아야 보여 줍니다.

   고로 <만물의 글>을 공부하면,
   <만물>을 보면서 삼위일체와 주와 수시로 통하게 됩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해서 통하려면 돈이 많이 들지만,
   <만물의 글>은 사용해도 돈이 안 듭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많이 얻게 됩니다.

   앞으로 설교할 때나 어느 특별한 날을 정해서
   만물의 글 읽기 시험을 보고,
   평소에도 만물의 글을 잘 읽는 사람을 교회에서 뽑아서
   상도 주고 용돈도 주라고 할 것입니다.

<전환 : 말씀 마무리>

◎ 핵심을 한 번 더 말씀해 주고,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신약 때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보낸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구원주입니다.

   고로 삼위일체와 연결되어 있으니,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하나님, 성령님, 성자가 보내신 예수님은 각각이면서도 하나입니다.

   마치 부부끼리 애인끼리 <몸>은 ‘각각’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고 통하니 ‘하나’로 보는 것과 같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이 시대 성약 때도 그러합니다.

   <시대 구원자>는 성약 때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보낸 자로서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을 <휴거>로 완성한 구원자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성령님, 성자>는 절대신, 유일신입니다.
   <보낸 자>는 삼위가 육으로 쓰는 자입니다.

   삼위일체와 보낸 자 분체는 ‘각각’이지만,
   연결되어 있으니 ‘하나’입니다.

   고로 ‘그’를 본 것이 곧 ‘삼위일체’를 본 것입니다.

   성자는 떠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지상에서 있으면서 분체를 쓰고 일할 때는
     <나 성자>와 <분체>를 ‘각각 따로’ 봤다.

     그러나 내가 지상에서 할 일을 다 마치고
     휴거된 영들을 데리고 떠나면서 <분체>에게 다 맡기고 가니,
     이제부터는 <나 성자>와 <분체>를 ‘하나’로 보고
     <나 성자>를 대하듯 <분체>를 대해라.

     <나무>와 <열매>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고로 <나무>에게 잘하면, 그 영양분이 모두 <열매>에게 간다.

     <내 분체>에게 잘하면,
     그것이 모두 연결된 <나 성자>에게 온다.” 하셨습니다. <끝>

   <연결된 것>을 ‘하나’로 봐야 되는데 ‘각각’으로 보면,
   자기만 손해를 보고 뒤처지게 됩니다.

   성자가 말씀하신 대로 안 보면, 수준이 낮은 자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7>

   <애인>은 천 리나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연결되어 있으니 ‘하나’로 봅니다.

   그러나 <남>은 옆에 가까이 있어도
   연결되어 있지 않으니 ‘둘’로 봅니다.

   이와 같이 <연결된 자>는 멀리 있어도 ‘하나’로 봅니다.
   그러나 <연결되지 않은 자>는 가까이 있어도 ‘둘’로 봅니다. <끝>

   현재 섭리사에 아직도 <분체, 구원자>에 대해
   관념적으로만 알고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상태로 살다가는 휴거되지 않습니다.

   겨우 <부끄러운 구원>을 받고 끝나는 자들도 있습니다.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인식과 사고가 다른 데 있으니 안 하는 것입니다.

   이는 운전하는 자가 한눈팔고 운전하는 것과 같아서
   순간 꽝 하고 사고가 나면 자기만 튕겨 나가고
   그제야 ‘내가 왜 이렇게 됐지? 살 수 있을까?’ 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8>

   <구원자>를 통해 <삼위일체>를 육으로 본다는 말은
   전혀 허황된 말도 아니고,
   환상적인 말도 아니고, 착시 현상도 아닙니다.

   <뇌>를 못 봐도 <자기 몸>을 보면 됩니다.

   <온몸>에 ‘신경’이 다 깔려 있어서 <뇌>와 연결되어 있으니,
   <몸>을 본 것이 <뇌>를 본 것과 같습니다.

   또한 지체는 다 연결되어 있으니
   <왼손>을 봤으면 <오른손>을 본 것과 같습니다.

   다만 모양과 생김새가 다를 뿐입니다.
   그러나 연결되어 있으니 ‘같은 살, 같은 몸’입니다.

   이와 같이 <삼위일체>가 <구원자>를 보내어 연결되어 있으니,
   <그>를 본 것이 <삼위일체>를 본 것입니다. <끝>

   <월명동 성지 땅>도 ‘보이는 곳’만 성전이 아닙니다.

   연결된 곳은 다 통하니 월명동 전체가 모두
   <자연성전>이고 <하나님의 백보좌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몸을 상징하여 전개한 곳>입니다.

   고로 전체를 깨끗하게 의미 있게 써야 됩니다.
   이를 알고 귀하게 보는 자만 귀히 씁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영>은 잘 못 보지요?
   그러니 ‘제2의 영’인 <혼>을 보면 <영>을 본 것과 같습니다.

   <혼>은 말하기를
   “<나 혼체>를 본 것이 <영>을 본 것과 같다.
     그런데 어찌하여 <영>을 보여 달라고 하느냐.” 합니다.

   <자기 혼>을 못 보는 사람도 있습니까?
   그렇다면 <자기 육의 행위>를 보면 됩니다. 왜요?

   <육>은 ‘제2의 혼’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낮에도 <자기 육의 행위>를 보면, ‘자기 혼’을 본 것입니다.
   꼭 꿈에 <혼체>를 봐야만 본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눈’으로 못 봐서 못 본 것이 아닙니다.
   <인식>을 잘못하고 보니까, 봐도 못 보는 것입니다.
   인식과 사고를 바로 하고 ‘눈’으로 봐야 그제야 보이게 됩니다.

   <이 시대 보낸 자>를 본 것이
   상징적으로 <하나님, 성령님, 성자>를 본 것입니다.

   삼위일체가 그를 보내어 그를 통해 말씀하시고 행하시니,
   <보낸 자>를 본 것이 <삼위일체>를 본 것입니다.

   이것이 ‘삼위일체를 육으로 본 것’입니다.

   <보낸 자>가 하나님과 성자의 말씀을 전할 때는
   거의 하나님과 성자가 말씀하신 그대로 줍니다.

   어려워서 정말 못 알아듣는 것만 풀어서 전해 줍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께서 ‘보낸 자’를 통해 직접 말씀하십니다.

   <삼위일체가 보낸 구원자>의 ‘육’마저 떠나면,
   더 이상은 ‘육’으로는 전능자의 말씀을 못 듣게 됩니다.

   고로 그가 살아 있을 때 들어야 됩니다.

   이제는 <성자>와 <분체>를 나누지 말고
   연결되어 있으니 ‘하나’로 봐야 됩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가 <선생>을 통해 말씀해 주셨는데
   하나로 안 보고 둘로 따로 보니, 선생의 말을 믿지 않고
   ‘성자가 직접 하시는 말씀’만 들으려 하게 됩니다.

   이미 <성자>가 <분체>를 쓰고 말씀하셨으니,
   성자는 더는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성자가 직접 하시는 말씀’만 들으려고 기다리면,
   성자는 더는 말씀하지 않으시니
   기다리다가 기회를 놓치는 자가 됩니다.

   가르쳐 줘도 절대 믿지 않으면 그는 어쩔 수 없습니다.
   아는 자들이 계속 가르쳐 주며 제대로 인식시켜 줘야 됩니다.

   섭리사에 아직도
   <성자>와 <분체>를 ‘하나’로 안 보는 자들이 많습니다.

   연결된 것을 하나로 봐야 ‘근본’을 보게 되어
   불이 붙고, 지혜와 지식의 차원도 높이고,
   영적인 차원도 높이고, 휴거의 차원도 높이는데,
   연결된 것을 하나로 못 보고 각각으로 보니,
   자기만 육적으로 생각하여 ‘차원’을 높이지 못하고,
   그에 따라 ‘영’이 빨리 변화되지도 않고,
   그로 인해 <휴거>도 뒤처져서 본인만 손해입니다.

★ <휴거 300선 이상>부터는 연결된 것을 하나로 봐야
   차원을 높여서 계속 올라가고,
   배에 돛을 단 자가 되어서
   먼 길을 항해하는 데 수백 미터씩 앞질러 갑니다.

★ 그동안 자기 공적이 부족해도
   성자와 분체가 90% 이상 책임을 지고 이끌어 주어
   불가능한 <휴거 300선>을 거의 다 이루었습니다.

   고로 <3.16 날>에 성자는
   300선 휴거의 영들을 데리고 <천국 황금성>에 가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이루어졌습니다!
   핵심 경기는 ‘승리’로 끝났습니다.

   <휴거 300선>까지는 성자와 분체가 거의 다 해 주니 쉽습니다.
   이제부터 ‘더 높은 차원으로 도전’입니다.

★ <휴거 300선>은 이제 집을 짓기 시작한 격입니다.
   이제 나머지는 ‘자기’가 하여 <휴거의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이때 휴거의 차원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연결된 것을 하나로 보는 것입니다.

   곧 <성자>는 떠났어도 <그의 육, 분체>는 땅에 있으니,
   영이신 성자가 그의 육을 쓰고 계속 행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성자>와 <분체>를 ‘둘’로 보는 자는 힘이 없습니다.
   고로 차원을 못 높입니다.

★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보낸 자>를 통해 ‘하나님과 성자의 말씀’을 듣고 행하며,
     삼위일체를 사랑하며 살면서 ‘신부’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면 됐지,
     왜 <삼위일체>를 보여 달라고 하느냐.”

     <심부름 하는 자>를 통해 ‘목적’을 전해 줬으면
     <심부름 시킨 자>가 안 나타나도 되는데 왜 그렇게 보려고 하느냐.

     봐야만 믿겠느냐.

     <보낸 자>를 보고도 못 믿겠거든
     그가 하는 말과 그가 하는 일들을 보아라.”

     모두 오늘 말씀을 제대로 알고
     기존의 자기 사고를 다 쏟아 버리고,
     연결된 것을 하나로 보고 살아라.

     <삼위일체>와 <분체>
     <분체>와 <하와의 표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연결된 것을 ‘하나’로 보는 자는 주관권이 바뀌어,
     지혜도, 지식도, 신령함도, 능력도, 휴거의 차원도
     한 차원씩 쑥쑥 올라가게 된다.”

◎ 연결된 것은 하나다. - 말씀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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