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육계의 것도 제대로 안 하면 제맛이 안 나고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육계의 것도
 
제대로 깊이 안 하면 제맛이 안 나고,
 
영계의 것도
 
제대로 깊이 안 하면 제맛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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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수면 상태는 편한데,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수면 상태는 편한데,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
 
 
 
고로 깨지 못하고 계속 그 상태로 있으면, 손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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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줘도 모르면 실패한다. 안 자만 믿고 행하여 주를 맞고 기뻐한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말 씀] 정명석 목사



[본 문] 이사야 7장 14-15절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오늘은 하나님이 ‘메시아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어

이 땅에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을 기념하는 <성탄절>입니다. 


그런데 4000년 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이 보낼 메시아>를 기다리던 구약 종교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도 <메시아 예수님>이 왔을 때 맞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메시아 예수님’을 갑자기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구약 종교인들이 추종하던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미 예언하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사야 7:14-15)


또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하시기를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하시며,

<베들레헴>에서 ‘구주’가 태어난다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성경 미가 5장 2절 말씀입니다. 


이 밖에도 하나님은 구약 종교인들이 추종하던 선지자들을 통해

<메시아>에 대해서 예언해 놓고, 

그 예언대로 ‘메시아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구약의 유대 종교인들은 

그렇게도 ‘메시아’를 기다렸으나 결국

<하나님이 보낸 예수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메시아>가 왔어도 못 맞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경의 예언을 이루셨고 

이스라엘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믿지 않고 배척하며 핍박해도

<하나님의 역사>는 유유히 흘러가면서 뜻을 다 이룹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약속대로 주셨어도, 모르면 실패하고

안 자만 믿고 행하면서 주를 맞고 기뻐하게 됩니다.

모르면, 옆에 있어도 맞지 못하고 사니

모두 다시 알고 깨닫고 행하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과 약속대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그를 보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 돌리기 바랍니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전화도 번호가 맞으면 연결된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전화도 번호가 맞으면 연결된다.

상대와 마음과 생각이 맞으면,

대화가 되고 답을 얻는다.

삼위와 주와도 그러하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자기가 행하다가 따라오는 자체 일도 있지만,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자기가 행하다가 따라오는 자체 일도 있지만,

하나님이 사랑하여 뜻 있는 것을 주시려고,

그 행위에 따라서 여건을 틀어 인도해 주시는 일이 많다.

이것을 믿어야 하나님이 자꾸 해 주신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해라. 하지마라. 전능자 하나님의 말에 절대 순종하여라.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말 씀] 정명석 목사


[본 문]

요한복음 8장 51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구약에서 신약까지 성경을 보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보낸 메시아나 선지자들이나 일을 맡긴 자들에게

어떤 일을 놓고 말씀하실 때

“해라.”, 혹은 “하지 마라.” 하고 간단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이 별것 아닌 것 같은데

행하면 ‘그리도 중하고 귀한 말씀’이며,

어느 때는 ‘삶과 죽음이 좌우되는 것’도 있고,

어느 때는 ‘복과 화가 좌우’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삶과 죽음, 최고 좋은 복과 최고 나쁜 화가 좌우되는 말씀>인데도

왜 ‘내용’은 말씀을 해 주지 않으실까요?


‘내용’을 말해 줘서 말씀에 순종하면

전능자의 <말씀>을 보고 순종한 것이 아니라

<내용>을 보고 그것을 중심하여 행한 것이 됩니다.

<내용>이 ‘화’를 당하는 것이라서 순종하거나,

<내용>이 ‘복’을 받는 것이라서 순종한다면

<생각의 중심>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지 않고

그 ‘내용’에 둔 것이 됩니다.

고로 <말씀의 권위>를 중심하지 않으니

그것이 곧 ‘하나님’을 중심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또 왜 하라고 하는지, 왜 하지 말라고 하는지

미리 알려 주면 ‘내용’을 의식하니

오히려 <할 것>도 못 하게 되고 <안 할 일>도 하게 됩니다.  


그러니 <내용>을 궁금해 할 것 없이

하나님이 “하여라.”, 혹은 “하지 말아라.” 하시면,

<전능자의 말씀>이 얼마나 큰지 깨닫고

즉시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씀의 권위를 세우는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네 희망을 어디에다 두느냐.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네 희망을 어디에다 두느냐.

이미 과거에 해 보았는데,

또 육에 속한 것에 네 희망을 두느냐.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영적 차원을 높여라.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말  씀]  정명석 목사



[본  문]  고린도전서 13장 11절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오늘 성경 본문 말씀, 고린도전서 13장 11절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이 말씀과 같이 

생각도 행실도 차원이 낮을 때는

말하는 것, 깨닫는 것,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으나,

성장하고 차원이 높아지면 ‘어린아이의 것’을 버리고

차원 높게 말하고 깨닫고 생각하게 됩니다. 



로마서 8장 5~8절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이 말씀과 같이

<육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차원이 낮아서입니다.

그러나 <영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차원이 높아서입니다.




<고양이 차원>은 낮습니다. <치타 차원>은 높습니다.

기능도, 행함도, 사냥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개미 무게>는 가볍습니다. <코끼리 무게>는 무겁습니다.

<무게>로 ‘차원이 결정’됩니다.

이와 같이 <신앙>도 ‘생각과 행위의 차원’으로 결정됩니다.



<시력>을 보세요. <자기 시력>만큼만 보이지요?

그 이상은 보고 싶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영의 차원>도 그러합니다.

<자기 영의 차원>만큼만 보이고 깨달아집니다.



인간은 ‘차원’대로 누리고 기뻐합니다.

<차원>을 높여야 ‘좋은 것’을 알고 행하게 되니

힘들어도 ‘자기 차원’을 높여야 합니다.



차원을 높이려면 먼저 <말씀>을 깊이 보십시오. 

깊이 보고 알아야 깨달아져서 ‘차원’이 높아집니다.

또, <주>가 높은 차원에 계시니

<주>와 일체 되고 하나 되면 <주>를 따라서 같이 차원이 높아집니다.



모두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최고의 차원’으로 매일 오르기를 축복합니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만들기에 따라 자기 인생을 평가 받는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만들기에 따라


자기 인생을 평가 받는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간절한 기도, 간절한 대화, 간절한 삶이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말 씀] 정명석 목사


[본 문] 누가복음 22장 44절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기도>는 ‘신앙의 기본’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대화>가 ‘기본’이듯,

하나님을 믿고 살면서 <기도>는 ‘기본’입니다.


<기도>는 ‘대화’입니다.

<조건>을 만들어야 얽힙니다. 그 조건이 곧 ‘기도’입니다.

<기도>해야 하나님과 얽혀서 하나님이 실행하시고,

우리 책임 분담의 일도 함께해 주십니다.


<기도의 응답>은

간절하게 구한 자와 합당하게 구한 자가 받게 됩니다.


<대화>와 <기도>뿐 아니라 <자기 생각과 행위>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간절하고 온전해야 합니다.


왜요? 

저마다 <자기 생각과 행위>가

‘기도’가 되고 ‘대화’가 되기 때문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간절하고 온전하게 행함으로

<자기 행위와 삶>이 ‘간절한 기도’가 돼야 합니다.


그렇다면 간절히 하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간절히 하는 것>이란,

간이 저릴 정도로, 창자가 당길 정도로 하는 것입니다.

<간절히 하는 것>이란,

배추에 소금 간이 배어 절도록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은 <마음>만 간절하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돌감나무>와 <참감나무>도 하나 돼야 ‘참감’이 열리듯

<생각과 몸> 둘이 일체 돼야 ‘목적’이 이루어집니다.

<돌감나무>에 <참감나무>를 접붙일 때,

정성스럽게 섬세하게 간절하게 접붙여야 완전히 붙듯

하나 되어 행하되, 간~절히 행해야 ‘뜻’이 이루어집니다.


이 간절함을 가지고,

거짓 없이 간절히 대화하고 기도하고 생각하고 행하기 바랍니다.


모두 주를 머리로 삼고

자기 간절함이 하나님의 마음에 절도록 간절히 끝까지 하기를 축복합니다.






[정명석 목사의 영감의 시] 응답

[정명석 목사의 영감의 시]



   진실한  
   기도는   
 전능자 
 하나님 
 듣고서 
 운명을 
 좌우를 
 시킨다 
  

 전능자 
 하나님 
 응답을 
 한것을 
 그누가 
 틀어서 
 바꿀자 
 있으랴 
  

 사탄과 
 악인들 
 발악을 
 하여도 
 결국엔 
 심판을 
 받고서 
 지옥의  
 고통을 
 더받게  
 된단다 
  

 진실한 
 기도만 
 천사가 
 가지고 
 올라가  
 하나님 
 보좌에 
 놓는다 
 하나님  
 보시고 
 때맞춰 
 합당한 
 응답을 
 주신다 


 이말을 
 믿고서 
 감사를 
 하면서 
 기다려 
 있으라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자기가 신령하여 스스로 영에 속해 행해도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자기가 신령하여

스스로 영에 속해 행해도

머리 되는 주를 떠나서 행하면,

그 역시 육에 속한 자다.

이런 자는 머리 없이 몸만 가지고 있는 자와 같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네가 중심하는 것에 따라서 네 생각도 행실도 삶도 달라진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말 씀] 정명석 목사


[본 문] 요한복음 4장 32절, 34절 (핵심 봉독)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사람은 <자기가 보고 듣고 겪는 것>에 따라서 
‘생각하는 것’도 ‘행하는 것’도 달라집니다.

<자녀가 있는 가정의 부부>와 <자녀가 없는 가정의 부부>는 
‘생각’도 ‘행실’도 ‘삶’도 다릅니다.

이와 같이 주체는 <대상>에 따라서 ‘삶’이 달라집니다.
대상도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집니다.
또 자기가 <누구를 믿고 모시고 사느냐>에 따라서
‘생각’도 ‘행실’도 ‘삶’도 달라집니다.

<왕>과 일체 되면 ‘왕’과 함께 행하듯
<주>와 일체 되면 ‘주’가 어디 있어도 ‘주’와 같이 행하게 됩니다.

자신이 중심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생각도 행위도 삶도 달라진다는 말을 진정 깨닫기 바랍니다.

지금은 ‘2016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는 때’입니다.
이때 오직 ‘주를 머리’로 하고
<주>를 매일 생각으로, 행함으로, 혼으로, 영으로 맞고,
<시간>을 잘 따지고 ‘올해 못다 한 것들’을 하고,
어서 ‘청산할 것들’을 깨끗이 청산하길 기도합니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것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것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삼위와 주와 같이 행하며

기뻐하는 자에게만

기쁨도 희망도 쉬지 않고 연속된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자기 육이 삼위를 진정 사랑하고 주를 사랑하고 살았더니 꾼 꿈은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자기 육이 삼위를 진정 사랑하고

주를 사랑하고 살았더니 꾼 꿈은

거의 짝사랑 꿈이 아닌

계시의 꿈이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목적을 정하고 도전하며 행해라.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말 씀] 정명석 목사


[본 문]시편 108편 1절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목적과 목표를 정하는 것>은
마치 집을 지을 때나 개발할 때 ‘설계도’를 그려 놓고,
그 설계대로 집을 짓고 개발하는 것과 같습니다.

배가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데, <목적> 없이 그냥 이리저리 떠다니면 
결국 바다에서 표류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신앙도, 만사의 모든 일도 
<목적>을 정해 놓고 해야
<정신>도, <생각>도, <행동>도, <말>도, <삶>도 
흐리멍덩하지 않고 확실합니다. 

<목적>을 놓고 행하는 자는 
마치 ‘산 정상을 목표로 정해 놓고 가는 자’와 같아서
     ‘다른 방향’으로는 안 가게 됩니다. 
고로 ‘시간’도 ‘인생’도 허비하지 않고 힘들어도 ‘도전’하게 됩니다. 

<목적>을 정하고 연구하고 행하며 강하게 살아야
많이 하게 되고, 빨리하게 되고, 고치게 되고,
목적을 이루는 기쁨이 쉬지 않습니다.

모두 <목적>을 정해 놓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배가 목적지를 놓고 넓은 바다를 항해하듯,
<정신과 생각>도, <행동>도, <삶>도 뚜렷하고 확실하여
<목적한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매일 하나님께
‘합당한 할 일’과‘합당한 목적’을 달라고 기도하고,
‘그 목적을 이룰 힘과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면서
<자기 목적 속>에 ‘성삼위’를 넣고 함께해야 합니다.

이번 주도, 2016년 남은 시간도, 또 새로 맞이하는 새해도
먼저 하나님과 성령과 주와 함께 <목표>를 정하고 
그에 따라 <시간>도 <날짜>도 보면서 행하고, 
매일 <자기 점검>을 하기 바랍니다.